【시론】 이신철(현대사분과) “우리의 자랑스러운 근현대사가 폄하되지 않도록 검토를 시작했다.” 이명박 정권의 첫 교육과학부 장관이 취임 100일도 안 된 5월 14일 한 모임에서 공개적으로 한 언명이다. 그는 취임 이후 소위 ‘4·15 학교 자율화조치’를 발표해 일선학교를 무한 경쟁으로 내몰았다. 어린 학생들은 ‘0교시 부활’, ‘일제고사 부활’ 등 자신들에게 닥친 새로운 환경에 전율하고 있다. 그는 급기야 ‘스승의 날 모교방문 사건’을 일으켜 도덕불감증을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그런 그가 그런 바쁜 와중에 역사·사회 교과서를 수정하겠다고 나섰다. 매일 매일 새로운 정책발표와 새로운 사건에 시달려온 그가 역사교과서를 한 번이라도 읽어볼 시간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가 비록 학자(서울대 공대) 출신이기는 하지만, 분과학문의 전문성마저 무시할 만큼 역사적 소양이 높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왜 그는 선두에 서서 역사교과서 문제를 꺼내고 있는 것일까? 그가 내세운 이유는 “경제단체를 중심으로 역사·경제 교과서 내용에 대한 수정 요구가 많아”서 이다. 그가 말하는 경제단체는 대한상공회의소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기업의 이익보호를 추구하는 경제단체이다. 그들은 경제, 특히 기업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들이 수정을 요구하는 내용을 보면 그러한 속셈이 너무 노골적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고등학교 국사교과서(1종) 조선시대 부문에 나오는 “조선은 고려보다도 상업 활동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였다”라는 서술 뒷부분에 “이는 역사적인 후퇴였다.”라고 명기할 것을 주장한다. 또 “조선은 기본적으로 주변 국가와의 무역을 통제하였다.”라는 구절 뒤에도 “이 또한 역사적으로 볼 때 퇴보를 의미하였다”라고 써넣으라고 한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상업의 발달정도나 상업정책을 기준으로 비교하며 역사적 후퇴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남기현> 그런데 개항기 조선이 불평등 무역으로 인해 피해를 보게 된 사실에 대해서는 또 다른 잣대를 들이댄다. 기존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는 “교역의 확대는 경제생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고, 특히 “면제품을 들여오고 곡식을 가져가는 구조로 이루어져 폐단이 매우 컸다”면서, “값싼 외국산 면제품은 가내 수공업 위주로 이루어진 국내의 면공업 발전에 결정적 타격을 주었고, 이에 따라 농민의 수입도 줄어들었다”고 쓰고 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는 보다 능동적인 대외개방 노력의 결여가 초래한 비극이었다”라는 구절을 삽입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시대적 조건은 고려하지 않고 전면적이고 능동적인 개방만을 강조하는 모습이 쇠고기 전면수입개방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이명박 정권의 인식과 빼닮았다. 그리고 산업화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열악했던 노동환경을 기술한 것을 편향적 시각이라며 수정을 요구한다. “제조업에 종사했던 많은 노동자는 산업화 과정에서 나쁜 작업 환경 아래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이라는 악조건에 시달려야 했다”라며 당시의 열악했던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제조업에 종사했던 노동자들 가운데 산업화 과정에서 나쁜 작업 환경 아래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이라는 악조건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었으나, 다른 나라의 경우에 비교하여 크게 열악한 편은 아니었다”라고 고치자고 한다. 백번 양보해서 산업화 과정은 어느 나라나 힘들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과정을 당연시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우리나라의 산업화가 너무나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자신의 인권을 짓밟혀가며 현장에서 땀을 흘린 노동자들의 노력이 밑바탕이 되었다는 사실은 상식에 속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돌아간 대가는 기업가들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하다. 그런 그들에게 고작 한다는 소리가 다른 나라보다 못한 건 아니니 불평하지 마라는 건 너무 가혹하다. 어쨌거나 대한상공회의소도 자신들의 주장을 말할 수 있는 자유는 있으니, 그런 의견을 낸 자체로 나무라기만 할 일은 아니다. 아흔 아홉 칸 가진 부자가 한 칸 더 채우려고 애쓰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인간의 ‘욕심’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의 정치적 행보와 그들에게 이론을 제공하는 세력이다. 교육과학부 장관이 언급한 ‘경제단체를 중심으로’라는 말 속에 포함된 또 다른 집단이 있다. 바로 교과서포럼이다. 1. ‘자랑스러운 근현대사가 폄하되고 있다?!’ 교과서포럼은 2008년 3월 "대안 교과서 - 한국 근·현대사"라는 책을 편찬했다. 책머리에 이런 말이 있다. “기존의 교과서는 우리 삶의 터전인 대한민국이 얼마나 소중하게 태어난 나라인지, 그 나라가 지난 60년 간의 건국사에서 무엇을 성취했는지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는다.” 한마디로 기존의 역사서술이 자학사관이라는 비판이다. 교육과학부 장관이 언급하고 있는 좌편향의 근거이기도 하다. <ⓒ남기현> 기존의 역사교과서들이 과연 그런가하는 의문이 먼저 든다. 자신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쓰지 않는 역사책도 있을까? 설사 자신의 역사를 비판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왜 좌편향인가라는 의문이 자연스레 돋아난다. 도대체 이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취’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기존의 교과서가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억울한 희생이 있었으며, 민주화를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흘렸는가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또한 오늘의 산업화를 위해 희생당한 수많은 민중의 역사를 살피기 시작했다는 점에도 관심이 없다. 오로지 그들의 관심은 대한민국의 탄생과 그 이후의 경제성장에 몰려 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이승만과 박정희, 그리고 기업인들이 역사의 주역으로 재평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다 보니 이들의 책에는 노동자들의 역할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없다. 도시 빈민들의 생존권 확보투쟁은 “철거에 물리적으로 저항하거나 국공유지의 유리한 불하를 주장하는 빈민촌의 집단행동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것으로 인식된다. 반면에 박정희의 ‘10월 유신’ 마저 자주국방과 중화학공업의 발전을 위한 것으로 미화된다. 예컨대, 주한 미군의 감축 움직임, 1972년 미국과 중국의 ‘국교수립’(사실 이 부분은 이 책의 수많은 오류 중 하나이다. 미국과 중국은 1979년에 와서야 국교를 수립했다), 일본과 중국의 국교수립 등 “한국을 둘러싼 군사안보와 국제정세의 중대한 변화를 맞아 박정희는 자주국방체제를 추구하였다고”고 주장한다. <ⓒ남기현> 그리고 이 시기 경제상황은 “노동집약적 경공업을 대신하는 새로운 성장산업이 필요”했고, 박정희는 이미 1972년 5월~9월에 그러한 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주장한다. 그리고 결국 박정희가 10월유신이라는 정변을 일으키고, “자신에게 집중된 행정국가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자주국방과 중화학공업화를 강력하게 추진”하였던 것으로 미화한다. 한마디로 개발독재의 정당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동양사회는 서구와 달리 민주화와 산업화가 동시에 진행되기 힘들다는 고전적인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주장하고, 후세들에게 가르치려 하는 것이다. 결국 교과서포럼측이 자랑스럽게 여기고 싶은 대한민국은 이승만의 ‘건국’과 박정희의 개발이다. 이승만이 우리 현대사에 미친 ‘긍정적인’ 역할에 대해서는 이 책에서 수도 없이 반복되고 미화되고 있다. 때로는 사실의 과장, 왜곡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그를 미화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사회주의화의 길을 막아내고 자본주의화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 하나의 사실만으로 다른 모든 오류는 덮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2. 북한은 보론, 미국 중심 세계질서는 순리? 교과서포럼측이 건국과정에서 이승만의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논리는 일본 우익들의 식민지 정당화 논리와 흡사하다. 일본 우익들은 대한제국을 그냥 두었으면, 러시아의 식민지가 되었을 것이고 그럼 사회주의의 길로 들어섰을 것인데, 그것보다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게 훨씬 나았다고 주장한다. 일본 우익들이나 교과서포럼측은 역사의 주체에 대한 고민이 거의 없는 듯하다. 만약 사회주의를 포기한 소련, 또는 사회주의를 변형한 중국이 미국보다 더 큰 경제대국이 되거나, 더 나은 복지국가가 된다면 어떤 논리로 그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 <ⓒ남기현> 우리가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면, 그것이 마냥 잘못된 선택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라는 단정은 어디에 근거한 것일까? 소련과 중국은 최소한 자신의 역사를 자신들이 선택했고, 지금도 선택하고 있다. 우리가 식민지를 그토록 반대하고 극복하려고 했던 것은 바로 우리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우리가 식민지가 되지 않았거나, 해방직후 분단이 되지 않았다면 새로운 근대국가 수립을 둘러싸고 전쟁에 버금가는 내부적 갈등을 겪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발전의 한 과정이었을 것이고, 우리는 매시기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해 나가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런데 교과서포럼측은 청일전쟁 이전에는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가 있었고, 그 이후에는 일본이 동아시아 질서의 중심이 되었고, 그리고 해방이후에는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가 성립되었다고 주장한다. 여기까지는 동의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들은 지금까지의 역사서술에는 일본 중심의 질서와 그에 대한 민족적 저항만이 중시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그것이 “중국질서와 미국 질서를 이야기하면 민족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 아닌가라고 문제를 제기한다. 언뜻 보면 맞는 말 같다. 그러면 교과서에서 국제질서와 관련해서 무엇을 써야 하는가? 중국 중심 질서와 미국 중심 질서에 저항하는 역사를 써야 된다는 주장일까? 그럴 리가 만무하다. 그들은 우리가 중국 중심의 질서를 인정하고 살아왔듯이 미국 중심의 질서에도 순응하며 살아가자는 이야기를 한다. 그럼 일본은? 거기에 순응하면서 근대훈련을 쌓아왔던 우리 민족의 ‘저력’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내세운 근대훈련을 받은 세력은 쉽게 말해 ‘친일민족반역자’들이 대부분이다. 애석하게도 그것은 김구나 무장독립투쟁을 했던 사람들이 아닌 것이다. 김구는 기껏해야 “1896년 민왕후의 원수를 갚고자 일본 상인을 군인으로 오인하여 살해”했고, 한인애국단을 조직해 ‘항일테러’를 시작했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1948년 남한만의 단독 총선거를 실시한다는 국제연합의 결의에 반대하고, 북한에 들어가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교섭을 벌였으나 실패”했다. 그리고 그는 “대한민국의 건국에 참여하지 않았던” 인물로 평가된다. 교과서포럼측의 논리에 빗대면 그는 살인범에 테러배후였으며, 미국중심의 국제질서에 저항한, 실패한 지도자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한 바가 없는 인물이다. 그런데 어떻게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을까? 그래서 이들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임시정부 이전에, 이승만이 집정관총재로 있었던 한성임시정부에 있다는 사실을 그림까지 곁들여가면서 강조하고 있다. 이렇듯 자본주의 근대화와 미국중심의 국제질서를 강조하다 보니, 해방이후 북한이 설자리가 없어져 버렸다. 헌법을 유난히 강조하는 교과서포럼측이, 38선 또는 정전선 이북 지역도 대한민국의 영토로 규정하는 헌법규정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사회주의체제를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대한민국사의 보론으로 전락시켜 버린 것은 자기모순이다. 북한에 대한 이들의 기본인식은 “1946년 2월 일제가 제정한 모든 법률과 기구를 폐기해 버림으로써 곧바로 문명의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가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식민지 시기는 “근대 문명을 학습하고 실천함으로써 근대국민국가를 세울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이 두텁게 축적되는 시기”였는데, 그 시대의 법률과 기구를 폐기해 버렸으니, 어찌 문명을 계속 발전시킬 수 있느냐는 주장이다. 그 이후의 북한에 대한 서술은 보나마나다. 분단 책임을 일방적으로 전가시키는 것(사실 이 문제에 관해 그들이 내세운 가중 중요한 근거인 ‘스탈린의 지령’은 사료오독이며, 다른 근거들도 사실과 다른 것이 대부분이다)은 말할 것도 없고, 흡수통일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이해하고 주장하고 있다. 역사상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보다는, 남북 정상의 합의문이 남한에서 벌어진 ‘체제논쟁’의 빌미가 되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사실로 다루어진다. 남북화해에 의한 이산가족 상봉이나 경제교류의 성과에 더 많은 관심을 돌리기보다는 북한이 ‘집단생산과 집단분배의 경제체제’를 공식적으로 포기하지 않았음을 비판하는데 열을 올린다. 이들의 인식에서 인권이나 평화에 대한 개념을 찾아보기는 참으로 어렵다. 특히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나 북한사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역사교과서가 올바른 비판정신과 평화와 인권 등 21세기의 새로운 시대정신을 이해하는 도구로 학생들에게 다가가야 한다면, 분명 이 책은 그러한 대안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경제제일주의와 남북이념대결을 조장하고 미국중심의 세계질서 편입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교과서가 우리의 미래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3. 교과서를 정치적 도구로 만들 수는 없다. 박정희정권이 유신을 전파하는 도구로 교과서를 활용한 이래, 김영삼 정권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교과서는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어 왔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특히 당대사에 대한 서술은 정권에 대한 우호적인 서술이 관행이라고 여길 정도였다. 그런데 2002년 제7차교육과정이 도입되면서 ‘한국 근·현대사’ 과목이 생기고 검정제도가 도입되었을 때, 김영삼정권과 김대중정권에 대한 서술이 편향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자신들이 집권했던 시절의 교과서를 한 번이라도 읽어 보았더라면 그런 말은 쉽게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더 웃기는 일은 당시에 일부 언론은 역사교과서들이 김영삼 정권에 대해 비판일변도로 기술한 것처럼 주장했지만, 사실은 김영삼 정권의 성과도 병렬적으로 기술되어 있었다. 당시 야당이었던 현 여당은 원형경기장에 들어선 사자처럼 온갖 비난을 쏟아냈다. 그들은 “단군 이래 최대의 부정부패를 덮고 광적인 우상화작업에 나선 것”, “현 정권의 힘 있는 사람이 4개 출판사에 현 정부의 치적을 기술하라고 압력을 가한 것이 아니냐”, “청와대 비서실장과 교육부총리의 야심작” 등등의 막말을 쏟아냈다. 그런데 6년 후 이들의 주장이 현실화 되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 나만의 착각은 아닌 듯하다. 정말 현 정권의 힘 있는 사람이 나서기 시작했다. 교육과학부장관이 나서는 것은 이미 현실화되었고, 교육과학문화수석(이제는 물러났지만)이 배후라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교육과학부는 대한상공희의소의 의견임을 핑계로 출판사를 통한 집필자 개인에 대한 압력을 노골적으로 가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학교 현장에 1970년대 반공만화의 속편 같은 만화책이 재향군인회의 이름으로 뿌려지고 있다. 일부 교육청은 공문을 통해 그것의 배포를 요청해 물의를 빚고 있다. 현 정권 담당자들은 ‘잃어버린 10년’을 입버릇처럼 되뇌었다. 그러면서 이들은 모든 것을 10년 전으로 되돌리려 하고 있다. 교과서도 10년 전으로 되돌리고 싶어 안달인 것 같다. 미래지향적이고 평화적인 가치를 담은 교과서를 만들기 위한 수많은 학자들과 교사들의 노력은 안중에도 없다. <ⓒ남기현> 역사학자들이 밝혀놓은 수많은 진실들이, 그리고 새로운 가치관에 걸맞는 역사해석이 정치적 입장에 따라 왜곡되고, 재단되어 학교현장에서 엉뚱하게 쓰이는 일은 도저히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의 역사왜곡이 문제가 되었을 때, 많은 연구자들이 문제점을 지적하고 학술적인 연구 성과를 제출했다. 뿐만 아니라 한일 시민사회의 영역에까지 진출해서 왜곡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시도했다. 덕분에 우리 역사 교과서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고, 많은 비판과 연구가 뒤따랐다. 지금의 검정제도와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는 부족하지만, 그러한 노력의 작은 성과들이다. 그런데 정권의 교체와 더불어 그 작은 성과가 위기에 처해 있다. 물론 우리 역사학계나 역사교육계가 그러한 정치적 압력에 쉽게 무너질 정도로 허약하진 않다. 그래도 연구자들이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그런 정부가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