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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주몽》과 퓨전 사극의 이모저모

BoardLang.text_date 2006.10.20 작성자 송호정

드라마 《주몽》과 퓨전 사극의 이모저모


송호정(고대사분과)


MBC가 사운을 걸고 300억을 들여 만들었다는 주몽 드라마가 시작부터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더니 급기야 40%의 시청률을 넘어섰다고 한다. 나 역시 주몽을 즐겨보다 보니, 초등학생인 두 딸이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11시가 넘도록 T.V.에 매달려 있어도 말릴 수가 없다. 집으로부터 걸어서 10분 거리에 연구실이 있지만 나는 매일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처럼 자정이 다 되어야 집에 들어오곤 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월요일과 화요일 저녁에는 온 가족이 함께 T.V. 드라마를 보고 있다.


요즈음 주몽이 부여에서 탈출하는 과정을 그리면서 작품의 밀도가 많이 떨어져 “짜증 지대루다~”지만 드라마에 대해 뭐라 하면 곧바로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야” “자꾸 따지지마” 라는 딸들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주몽과 소서노가 화면에 나올라치면 “너무 멋있어~” 소리를 연발한다. 가끔 전투 장면에서 1타 3피를 연상시키듯 주몽의 활시위에서 3발의 화살이 동시에 날아가 세 명의 적을 쓰러뜨리면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고야 만다.  그리고 지들이 언제 인순이 노래를 좋아했다고 인순이의 “하늘이여 제발” 노래가 나오거나 어쩌다 다른 방송에 인순이만 보여도 “야, 인순이다” 소리를 친다. 인순이가 단지 주몽 드라마의 O.S.T. 노래를 불렀다는 이유 하나로 이렇게 인기 폭발일 줄이야.


탄탄한 대본, 짱짱한 배역과 연기, 화려한 볼거리 등이 복합되면서 주몽 드라마는 인기 가도를 달려 왔다. 역사 드라마는 과거의 역사 사실을 바탕으로 거기에 작가의 상상력이 덧대어져 만들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먼저 부여사를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지금까지 주몽 드라마를 보고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점은, 지금처럼 주몽이 부여에서 활동하는 장면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졸본 땅에서 고구려를 건국하고, 한나라 현도군을 몰아내고, 부여의 대소와 경쟁하는 장면에 더 신경을 썼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부여 땅에서 주몽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말해주는 어떤 사료도 없기 때문이다. 부여의 역사와 주몽의 활동을 연결시키느라 작가가 얼마나 고생하는 지가 화면마다 역력히 보인다.


전체 60회 분량 가운데 모두 40회를 방영한 지금, 주몽 드라마는 크게 보아 주몽이 부여에서 탈출하기 직전까지의 상황을 그려 나갔다. 해모수, 금와, 유화부인, 대소, 주몽, 소서노 같은 비중 있는 배역의 상호 관계 만큼은 동명성왕[고주몽] 설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설화는 설화일 뿐 어떠한 역사적 사실도 명확히 말해주지 않는다. 주몽 설화를 통해 우리는 부여 왕실 내에서 어떤 알력이 생겨 주몽으로 표현되는 세력 집단이 쫓겨나와 졸본 땅에서 새로운 국가, 고구려를 세웠다는 사실만을 알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과 그들 간에 벌어졌던 수많은 사건들을 누구도 알 수 없다. 오직 작가만이 알 수 있다.


많은 기록에서 주몽은 신비로운 출생 과정을 통해 성스러운 혈통을 타고 났음을 내외에 알리고, 실제 명령 하나로 자연 속의 동물과 식물을 움직이게 하는 신이한 능력을 지닌 인물로 묘사되었다. 드라마 상에서는 망나니가 각고의 노력 끝에 신의 활솜씨를 갖는 것으로 그렸는데, 사실 이때가 제일 재미있었다. 눈을 가린 채 수십 발의 화살을 과녁에 꽂아 넣는 주몽. “저것은 과녁이 아니라 부여의 심장을 향해 쏘는 화살이다”라는 대사자 부득불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게 들린다. 소서노와 주몽의 운명적 만남, 그리고 엇갈린 인연을 그리면서 시청자들을 화면에 붙잡아 두는데 성공했지만 이때부터 드라마는 역사 드라마로서의 중심을 잃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주몽의 애청자로서 시청자들이 장면 장면에서 부여의 역사를 조금이나마 읽어주기를 기대한다. 드라마 처음에 등장한 한나라 강철부대와 맞서는 다물군의 존재나 모팔모 야철대장이 한나라 강철 검보다 강한 강철 검을 개발하는 장면은, 그 개연성과 함께 우리가 그 동안 주목하지 못했던 700년 부여 왕조의 역사에 대해 강한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이른바 아마추어 재야사학자들은 주몽 드라마에서 한나라가 부여보다 강하게 묘사되거나, 부여의 태자가 현토성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는 것, 게다가 부여의 왕자를 한나라에 볼모로 보내야 하는 상황이 중국의 동북공정을 도와주는 것이며 역사 왜곡이라며 강변한다. 그러나 이것은 작가의 말처럼 당시 부여와 한나라가 밀접히 교류하고 사신이 오가는 상황이었음을 고려하면 상정해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드라마의 전체 구도를 짜는 과정에서 해모수와 금와를 친구로 설정한 것이나, 사출도 신녀의 존재와 부여 왕실과의 대립 구도 등은 무척 재미있는 설정이라 생각된다. 소금산을 찾아내어 부여의 소금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백성들의 동요를 다스리는 장면은, 일반 사람들의 생활에 소금이 얼마나 중요하고 국가가 전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여준 것으로 무척 흥미롭고 신선했다.


여기서 부여사를 간단히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부여는 기원전 2세기 무렵부터 서기 494년까지 북만주 땅에 있었던 예맥족 계통의 국가이다. 부여는 오랜 동안 대개 중국의 왕조들과는 자주 교류하면서 친하게 지낸 반면, 선비족 같은 북방의 유목 민족이나 고구려하고는 세력을 다투면서 나라를 키웠다. 또한 주변의 동옥저나 읍루 같은 국가들을 신하로 삼으면서 중국 동북 지방 역사를 주도하였다. 그러나 부여는 결국 고구려에게 주도권을 내주었다. 그리고 부여의 지배층에서 떨어져 나온 집단이 고구려와 백제, 그리고 발해를 세웠다는 점에서 부여는 우리나라 고대국가 발전에 중요한 연원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부여 역사를 많은 연구자들은 주목하지 않았지만, 드라마에서 그려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생각한다.



<사진 1> 부여의 왕성으로 추정되는 길림시 동단산 원경 사진. 동단산은 원형으로 쌓은 토성으로 남쪽에 건물이 있던 남성자 유적이 있다. 바로 옆으로 제2송화강이 흐르고 있다.


하지만 사극은 역시 KBS인 듯, 드라마 곳곳에서 허술하고 설득력이 없는 장면들은 슬슬 시청자들을 짜증나게 한다. 설화상 주몽이 부여에 있을 때 누군가와 결혼해 유리 왕자를 낳아야 하는데, 그 대상을 처음에는 부영이로 설정했다가 캐릭터가 여의치 않자 이유 없이 사라지게 한 점. 최근 주몽의 탈출 과정을 둘러싸고 느슨해진 장면 전개와 황당한 장면들은 작가가 얼마나 헤매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진번과 임둔을 치는 과정에서 한나라와 부여 왕자가 내통하고, 한나라 군대 공격으로 신의 아들 주몽이 실종되고, 다시 사료에 안 나오는 한백족에 의해 구출되고, 그 부족장의 딸과 혼인하여 한백족을 장악한 뒤 졸본 지역마저 장악한다는 설정은 조금 억지스럽다. 부여 왕의 동생 영포(나는 영포가 너무 귀엽다)가 단순한 동기로 반란을 일으키는 장면은 황당하다. 내가 작가라면 주몽에 대한 부여왕 대소의 지나친 미움으로 어머니와 여미을 신녀의 충고대로 부여 땅을 떠나는 것으로 처리했을 것 같다. 그러면 설화 내용과 어느 정도 맞아 들어가고 장면 처리도 큰 고민 없이 재미있게 해결했을 텐데 말이다.



<사진 2> 길림성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던 유수 노하심 유적에서 출토된 부여 지배자의 유물들. 이전에는 전쟁시 부여 지배자들이 입었던 갑옷과 여러 철검, 그리고 각종 장신구들이 길림성박물관 전시실 한칸을 차지해 전시되었으나 지금은 동북공정의 영향인지 전시실에서 유물이 사라졌다.


시청자는 드라마의 줄거리와 함께 주인공의 연기력과 입고 있는 의상 등 탤런트의 모든 것을 주시한다. 역사 드라마에서 가장 신경을 써야 할 것은 바로 등장인물의 복장 같은 시대 상황에 맞는 소품을 마련하는 것이다. 고대사의 경우, 사료가 적기 때문에 전문가의 고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조금 급하게 만든 탓일까. 부여 왕실에서 음식을 먹을 때 그릇은 죄다 신라 토기이고 술병은 신라 무덤에서 나오는 서수형토기를 쓰고 있다. 어떤 때는 고려시대 정병도 사용한다. 부여의 병사들은 청동기시대 고조선의 지배자가 사용했던 비파모양 청동 창을 들고 한나라 강철 군대와 맞서 싸운다. 이러한 장면들은 드라마의 완성도를 떨어트리는 옥의 티라 하기에는 너무 큰 옥의 바윗돌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