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국가’ 일본과 야스쿠니 신사 (1) 이기훈(근대 2분과) 1. 나카소네와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는 일본 총리치고는 참 특이한 인물이다. 할아버지(영화 「청연」에 등장하는 바로 그 우정성 장관 고이즈미 마타지로)대부터 유명한 정치인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14살 연하의 재벌가 상속녀와 결혼했다가 4년만에 이혼한 독신남이다. 아들 고타로는 꽤 인기있는 연기자다. 경력이나 외모(헤어스타일부터 범상치 않다)도 그렇지만 고이즈미는 평의원 시절부터 여러모로 튀는 언행으로 동료 정치인들로부터는 이단아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또 그것이 고이즈미의 무기이기도 해서 대중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어 총리가 될 수 있었다. 어떻게 해야 대중의 호감을 사는지 잘 알고, 기존 정계의 서열이나 관행에 구애받지 않고 이를 실행에 옮긴다는 점에서 일본에서 보기 힘든 유형의 정치가다. 고이즈미가 여러 부담과 비판을 무릅쓰고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나카소네가 이를 비판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일본의 총리가 공식적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것은 국내외적으로 상당히 큰 의미를 지닌다. 무엇보다 일본이 아시아 주변 나라들과 어떤 관계를 가질 것인가 하는 문제와 아주 긴밀히 연괄될 수 밖에 없다. 최근 야스쿠니 신사를 둘러싼 논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일본의 전후 대외전략의 변화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2. 일본 대외전략의 변화 (1) 나카소네와 ‘전후 총결산’ 2차 대전 이후 일본은 헌법 9조에서 “전쟁이나 무력을 통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하게 이를 포기”한다고 명시하고, 무기수출 3원칙, 비핵3원칙 등을 내세웠다. 그렇다고 해서 전후 일본을 평화국가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실질적으로 일본은 전세계적인 냉전구도에서 가장 이익을 많이 누린 나라였다. 양대 진영의 대립 와중에서 한국과 중국이 전쟁으로 고통을 겪는 동안, 일본은 미군에 기지를 제공하고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면서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이 점을 들어 전후 일본을 “기지국가”라 하기도 한다. 1970년대까지 일본의 외교적 관심사는 철저히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었다. 일본이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입장에서 아시아와 관계라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은 1980년대부터였다. 1980년대 일본경제는 전성기를 누렸다. 자본의 해외진출이 크게 늘어나서 일부 재벌들이 경기침체에 허덕이던 미국의 유수한 기업과 부동산을 사들이자, 미국에서 제2의 진주만 공습이라는 소리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그러나 일본자본이 가장 적극적으로 진출한 것은 아시아 지역으로 직간접적인 투자가 급속도로 확대되었다. 1982년 총리에 취임한 나카소네는 ‘전후 총결산’을 당시 일본의 주요 과제로 내세웠다. 나카소네는 보수 일본 정계에서도 우익적인 인물이었지만, 일본이 경제력에 걸맞는 국제적 발언권을 얻기 위해서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전후 총결산’을 통해서 침략과 전쟁에 대한 책임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한 다음에야 정치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2) ‘잃어버린 10년’과 보통국가론의 등장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의 급격한 팽창은 도처에서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다. ‘거품’이 걷히면서 은행과 대기업이 잇달아 도산하였고 긴 장기불황이 시작되었다. 위기는 경제불황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정치에서는 자민당 1당 집권의 55년체제가 해체되면서 불안정한 상태가 시작되었다. 잇달아 터져나온 정치스캔들로 정치권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고, ‘주식회사 일본’을 이끌어온 관료제의 효율성에 대해서도 의심의 눈길이 모아졌다. 사회적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대중들 사이에서 내셔널리즘의 정서가 확산되었고 정치가나 언론인들 중에서는 이런 심리에 편승하려는 인물들이 등장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른바 ‘보통국가론’이 등장하였다. 1993년 당시 자유당 당수 오자와 이치로는 《일본개조론》이라는 책에서 일본이 국제사회에 적극 참여하고 군사적 지원을 포함하여 필요한 모든 조치를 자발적으로 실행하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자와는 국제연합으로 대표되는 ‘국제사회’에서의 기능과 역할을 강조하였지만, 이후 등장하는 보통국가론의 핵심은 실제로 집단적 자위권, 미국과의 동맹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보통국가’로의 전환을 군국주의의 부활이라고 바로 단정할 수는 없다. 보통국가론은 대부분 미국과 동맹 강화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노골적으로 단독 군사행동을 상정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과거 일본의 침략마저도 ‘보통국가’가 정상적인 발전과정에서 나타난 불가피한 현상 정도로 받아들인다면, 군국주의의 부활은 기우가 아닐 수도 있다. 따라서 야스쿠니 신사참배는 ‘보통국가’로의 행보와 관련되어서도 더욱 민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다음에는 야스쿠니 신사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