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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작전통제권 논란의 함정

BoardLang.text_date 2006.08.27 작성자 정창현
전시작전통제권 논란의 함정

정창현(현대사분과)


지난 8월 14일, 15일 광복절을 즈음해 광화문 일대에서는 다양한 성격의 집회가 열렸다. 일본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규탄하는 집회부터 전시 작전통제권(작통권) 환수를 규탄하는 집회까지 광화문은 몸살을 앓았다.
광복절 오전 경축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통합’을 이야기했다. 당면한 국가적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국민의 의견을 하나로 모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광복절 즈음한 집회를 보면서 대통령이 강조한 ‘대화와 타협을 통한 통합’은 너무나 공허하게 들린다.



(사진 1) 출처 : 연합뉴스

8월 14일 서울 종묘공원에서 있은 ‘한미동맹강화 국민대회’ 참가자들은 작통권 환수를 비난하며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했다. 그리고 부시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낭독했다. “존경하는 부시 미합중국 대통령님”으로 시작하는 메시지에서 이들은 “미국 정부가 전시작통권을 빨리 가져가라고 한 것은 한국 정부가 미국에 대해 동맹국과는 동떨어진 태도를 보인 데 따른 게 아닌가 한다”며 “설혹 지금 한국 정부가 서운케 하는 점이 있다 하더라도 미국과의 우정을 이어가고자 하는 대다수 대한민국 국민을 생각해주기 바란다”라고 밝혔다.



(사진 2) 출처 : 오마이뉴스


같은 시각 서울 세종로 미국 대사관 옆에서는 ‘반미·반전 평화수호 결의대회’가 열려 “미국은 한반도를 떠나라”라는 구호가 메아리쳤다. 이들은 “한반도의 평화실현과 민족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각계각층 민중들의 힘을 모아 (미국의) 대북제재와 전쟁책동을 막기 위해 전민중적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결의했습니다.


노 대통령은 두 집회 참가자 사이에 정말 대화와 통합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지 모르겠다.
60년 전 남쪽에서는 ‘신탁통치 절대 반대’, ‘모스크바삼상회의 결정 총체적 지지’를 외치는 각기 다른 집회가 열렸고, 그 대립은 폭력적 방법으로 해결됐다. 대립을 조정하려는 좌우합작 노력은 발붙일 곳이 없었고, 1947년 7월 몽양 여운형 선생의 암살로 허무하게 끝났다.
노 대통령은 “지난날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이단을 용납하지 않는 극단주의의 비타협 노선이 나라를 분열시켜 왔고 그것이 불행한 역사를 낳았습니다”라며 “앞으로는 통합의 노선이 현실의 힘으로 나라를 이끌고 역사의 정통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2006년 8월 15일 광화문 일대의 모습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현재 우리 사회는 자주와 동맹, 반미와 친미, 친북과 반북 등의 이분법적 판가르기가 난무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8월 14일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지도부를 잇달아 만나 “장기적으로는 작통권 이양을 통해 한미동맹이 강화될 것”이라며 “이 문제가 정치화 돼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이것이 미국의 공식입장이다.
다음날인 15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한국의 전시작전통제권(작통권) 환수 논란과 관련해 한국이 작통권 행사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의견에 공감한다고 발언했다.
부시 대통령은 미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전군 야전지휘관 회의’에 참석해 버웰 벨 주한미군 사령관에게서 전작권 이양 문제에 대해 보고 받았다. 이 자리에서 부시 대통령은 “한국이 작통권 행사 능력이 있다고 보느냐”고 물었고, 벨 사령관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동시에 “한국은 작통권을 행사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대답하자 부시 대통령은 “공감한다(I agree)”고 말했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의 ‘공감’ 표현은 미 국방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미동맹 재편 작업에 대한 신뢰를 표시한 것이고, 이에 따라 작통권 이양을 포함한 주한미군 재편 작업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에서는 정부의 작통권 환수 방침에 대해 전직 국방장관들에 이어 육해공군 사관학교 동창회와 예비역 장교단체까지 나서서 “작전권 공동행사는 전쟁보험”이라면서 반발하는 등 아직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미국 정부는 이양이 바람직하다는 쪽으로 입장을 굳히고 주한미군 재배치 작업 일정에 맞춰 적극적인 협상에 나설 태세를 보이고 있다.



(사진 3) 출처 : 쿠키뉴스


그렇다면 작통권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는 것이 반미이고, 친미일까 헷갈린다.
여야정치권이 합의하고 국민투표에 붙여 반대한다고 해서 미국의 작통권 이양이 없었던 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은 주한미군이 한반도를 넘어선 동북아 전체를 대상으로 병력을 운용하길 원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연합사 체계를 깨고, 주한미군의 단독 운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노 정부는 지난 1월 워싱턴 한미전략대화에서 ‘전략적 유연성’에 전격 합의했다.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한 이후 현재의 주한미군은 한반도를 넘어 전세계적 대 테러전쟁을 위한 신속기동군으로 존재하게 된다.
이처럼 작통권 변화는 우리의 주권과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개념이 중첩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통권 문제는 ‘환수’,‘이양(반환)’이라는 용어의 차이만큼이나 단순히 ‘자주국방’ 차원에서만 볼 수 없는 중대사안이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전개되고 있는 전시 작통권 환수 논란이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와 안정을 위한 ‘안보논쟁’이라기보다는 차기 대권을 둘러싼 ‘노무현 흠집내기’라는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부시를 존경하는’ 사람들은 부시의 한마디에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작통권 이양에 찬성할 것이다. 2003년 주한미군 2사단의 한강이남 이전에 대해 ‘안보불안’을 이유로 노 정부를 대대적으로 공격하다 주한 미 대사의 한마디에 잠잠해진 것처럼....


작통권 논란과 관련된 우리의 현실은 친미냐, 반미냐는 단순 판가르기가 아니라 ‘냉철하고도 종합적인 사고’를 요구하고 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주한미군의 한반도 외 지역으로의 활동 범위 확대를 의미한다. 그러나 현재의 연합작전지휘 체제에서는 주한미군이 한반도 외 지역으로의 독자적인 활동을 전개하는 것이 어렵다. 한국군과의 사전 협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작통권 환수 시기를 한국 정부보다 빠른 2009년을 제시하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같은 제약에서 벗어나 주한미군의 활동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미국은 작통권을 이양하고 한미연합사의 해체를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작통권 이양과 한미연합사의 해체는 노 정부의 ‘작통권의 환수=자주 국방’이란 논리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앞으로의 문제는 주한미군의 활동의 자유를 제어할 수 있는 장치를 어떻게 마련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더구나 한미연합사의 작통권 이양이 전시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작전권 환수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1978년 한미연합사가 창설될 때 한미연합사는 유엔사로부터 작통권을 이양(handover)받은 것이 아니라 위임(Reference)받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1980년 광주항쟁 당시 특전사가 연합사의 작통권을 일방적으로 해제하고 이동한 것으로 미국이 설명하는 논거가 바로 ‘위임’이다. 연합사의 작전통제 아래서도 한국군의 쿠데타가 가능했던 것은 한국군이 연합사 작전통제부대목록에서 자기 부대 목록을 제외시키면 되기 때문이다(이시우, 「연합사전시작통권 환수와 유엔사」, 통일뉴스 2006.8.24)
즉 한미연합사의 작통권 이양이란 우리 정부와 유엔사로 공동 귀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정전협정이 바뀌지 않는 한 작통권은 유엔사에 있다는 의미다.
정전협정에 따라 작통권이 유엔사문제와 연관되어 있는 이상 정부가 제시한 ‘주권 환수’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유엔사 문제가 해결될 때에만 군사주권 문제는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셈이다.


또 한미연합사의 해체는 잘못하면 한국이 미국 군수업체의 무기시장으로 더욱 빠져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노 정부는 작통권 환수 논의가 있기 전부터 E-X 조기경보기, 해상 초계기 등의 도입 계획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는데, 이러한 첨단 군사장비와 무기 구입 계획에 기름을 부을 수 있는 것이다.
남북한 군사력 비교를 통한 ‘북한군 우위론’은 허구일 뿐이다. 6.25전쟁 때 사용돼 이미 전차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북한의 T-30 등의 전차를 포함시켜 북한의 전차대수가 남한보다 1천대 이상 많다는 군사력비교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미 두 차례 치러진 ‘서해교전’을 통해 드러났듯이 남북간 공군, 해군력 사이에는 엄청난 격차가 존재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엄청난 규모의 군비증강을 계획하고 있다.
E-X 조기경보기를 도입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2조원 가까이 되며, 해상초계기 사업 역시 6,700억원에 달한다. 국방부가 최근 발표한 국방중기계획에 의하면 5년간 151조원, 국방개혁이 완료되는 2020년까지는 621조원이 투입된다. 2012년까지는 해마다 국방비를 9.9%를 증액한다는 계획이고, 현재 국방부가 추진하는 신무기도입에 대한 예산만도 42조원이 넘게 책정돼 있다. 또한 2005년 말 군사장비의 구입과 개발을 전담하기 위해 설립된 방위사업청은  연간 10조원의 무기구매 사업을 담당하게 된다.


노 정부는 작통권 환수를 자주국방, 군사주권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현실은 미국의 한미연합사 보유 작통권 이양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보, 유엔사를 통한 전시작권권의 실질적인 보유, 막대한 군수물자 수출 등 일방적으로 미국의 이해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작통권 환수논란의 허상에서 벗어나 유엔사를 해체하고, 북한군의 군사력 우위론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작통권 문제는 상징적인 군사주권이란 ‘빛깔 좋은 개살구’에 그칠 수밖에 없다.